사람들은 말한다. 현재를 살라고.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하라고. 거기에 최선을 다 하라고. 하지만 궁금하다.
"대체 어떻게 해야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뭐가 부족해서 이렇게 집중하지 못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 들지 않던가? 좋다. 누구나 그러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미 현재에 집중하는 사람은 제외하고. 자 그럼 한 번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자. 어떻게 하면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지.
차를 몰고 여행하는 사람을 상상해보자. 이 사람은 '현재' 운전을 하고 있다. 어딘가로 가고 있다. 물론 이 사람은 운전하는 것을 즐길 수 있고 길가에 보이는 경치나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즐겁게 운전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이 사람에게 '목적지'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데도 여전히 운전을 즐길 수 있을까? 그런데도 여전히 경치나 보고 자신만의 세상에 빠질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스스로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꾸만 나타나는 갈림길에 들어섰을 때, 대체 어디로 가야 한다는 말인가? 그냥 되는 대로?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다. 날이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데도 아무 생각 없이 차를 몰고 갈 수 있을까? 아마 어두워질수록 불안해질 것이고 더 이상 운전이 즐겁게 느껴지지 않겠지. 차에서 밤을 보내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들이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집중력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많지만) '아니 도대체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길인 거야?' 하는 생각을 하면서 즐겁게 운전할 사람이 몇이나 된다는 말인가? 좀 머리가 이상할 정도로 느긋한 사람이 아니라면 대개는 불안해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현재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을 너무 책망하지는 말자. 당신은 어떻게 해야 집중할 수 있는지 배우지 못했고 그래서 집중하지 못했을 뿐이다. 물론, 스스로 깨닫지 못한 것은 당신의 책임이겠지만 괜찮다.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극소수다.
당신은 지금까지 '내가 가는 이 길이 나에게 맞는 길일까?' 하고 고민하며 걸어왔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집중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뿐이다. 그걸 인정하고 이제 바꾸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그렇다. 아주 간단하다.
'목적지'를 찾으면 된다. 당신이 가야 할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아내면 된다. 하지만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느냐고? 거기에 대해서는 또 다른 글에서 이야기하도록 하자. 목적지를 찾아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생각보다 쉽다. 당신이 약간의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희망을 잃지 말자.
자, 이렇게 일단 '최종 목적지'를 찾고 나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거기로 가는 길'을 찾는 것이다. 목적지만 알고 길을 모르면 여전히 헤매야 할 테고 그 역시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길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제일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당신이 가려는 길을 이미 가보았고 그 길에 통달한 '안내자'를 찾는 것이다. 그가 옆에 앉아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때때로 말해준다면 당신은 안심하고 운전에 집중할 수 있고 즐길 수 있게 된다.
이것을 현실 세계로 바꾸어 말하자면, 바로 '스승'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당신이 가려는 목적지에 다다른, 살아 있는 누군가를 찾으라는 말이다. 물론 이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 쓴 '책'도 도움이 된다. 우리가 예전에 만들어진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갈 수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길은 늘 변하게 마련이고, 지금 당신이 가진 지도와 길가에 붙은 표식이 늘 같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늘 그 길을 다니는, 살아 있는 스승"이다. 또 그를 직접 만나기 어려운 경우는 그가 가장 최근에 쓴 책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이것은 '최신판 지도'처럼 그나마 당신이 스스로 운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당신은 목적지를 찾게 되고 그리로 가는 길을 알게 된다. 그렇기에 잘 모르는 길이 나와도 당황하거나 겁을 먹거나 불안해하기보다는,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유쾌한 길이 나타날 때 즐길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지 않은가? 이렇게 하면 당신은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빼먹은 것이 있다. 이렇게만 하면 다 될까? 그렇지는 않다. 다시 앞서 이야기하던 운전하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이 사람은 이미 목적지도 찾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줄 안내자도 찾았다. 그리고 열심히 길을 가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예전에도 나름대로 운전을 해서 길을 가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이 사람에게는 과거가 있다. 그리고 예전에 혼자서 운전하고 가다가 당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다.
갑자기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길이 너무 좁아서 돌려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 결국 꼭대기까지 올라가서야 겨우 차를 돌려 나올 수 있었다거나, 좁은 길에서 막다른 골목이 나타나서 후진으로 차를 몰고 꾸역꾸역 나갔어야 했다거나, 갑자기 길에 동물이 튀어나와서 깜짝 놀라 숨이 멎을 뻔 했다거나, 또는 다른 차와 부딪혀 사고가 났다거나 하는 등의 여러 가지 사건을 만났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은 결코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다.
자, 이제 그는 운전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안내자가 알려주는 대로 길을 잘 따라가고 있고, 그도 스스로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다. 벌써 목적지까지 가는 길의 20퍼센트나 왔다. 그런데 돌연, 예전에 사고가 난 곳과 비슷한 길이 등장한다. 그러면 그는 어떻게 하게 될까? 아마도 그때 느꼈던 고통과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일종의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런 사고를 당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긴장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렇게 되면 다시 여행은 즐겁지 않은 것이 되고 만다.
바꾸어 말하면, 당신은 '과거' 때문에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뜻이다. 이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다시 집중해서 길을 갈 수가 있을까?
이번에도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세상에서 풀어야 할 문제들은, 그 문제가 큰 것이면 큰 것일수록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따라서 답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제의 답은 "용서하라"는 것이다. 무엇을 용서하라는 말이냐고?
먼저 당신은 목적지 없이 헤매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던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 목적지 없이 운전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고, 자신에게 그런 경험이 지속되도록 방치해둔 자신이 밉게 느껴질지 모른다. 스스로 책망하고 싶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지 말자. 용서하자. 당신은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고, 그저 자기도 모르는 새 '사람들을 따라가고 있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도 목적지 없이 가고 있다는 걸 몰랐기에 그저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면, 그 사실을 알았더라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따라갔을지 모른다. 괜찮다. 누구나 실수는 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지나간 일이다.
당신은 이미 상처 받을 만큼 받았고, 고통 받을 만큼 받았다. 자신을 용서하지 않고 미워함으로써 아물려고 하는 상처를 다시 찢어버릴 필요는 없다. 가만히 내버려두고 용서하라. '그래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 하고 생각하라. 가슴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러면 상처는 저절로 치유된다. 다리에 난 상처가 저절로 낫는 것처럼...
그 다음으로 당신은 당신을 들이받았던 사람, 사고를 낸 차의 소유주, 갑자기 튀어나와 당신을 놀라게 한 고양이 등을 용서해야 한다. 이들 역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해서 그렇게 한 것이고, 길을 안내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고의로 당신에게 해를 끼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용서하자. 설사 고의로 했다고 해도 용서하자. 그것이 자신에게 좋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돌을 던져서 머리가 찢어지고 피가 났다. 그리고 당신은 이를 갈며 그를 미워한다.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한다. 그리고 상대도 당신에게 미안해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는 자기 잘못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또는, 고의로 그랬다면 애초부터 미안해하기는커녕 기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신은 그가 미워서, 찢어진 당신 머리를 때린다. 그가 밉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그를 쥐어박는 것이 아니라 당신 머리를 쥐어박는다. 이게 뭐 하자는 짓인가?
차라리 그를 한 대 쥐어박고 잊어버리던가, 아니면 그냥 용서하고 잊어버려라. 어차피 그는 잊어버리거나 애초부터 미안해하지도 않을 테니까 그가 밉다고 자기 머리를 다시 쥐어박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고 가슴속에 응어리를 품은 채 살아가는 것은 바로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행동이다. 그를 미워할 때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는 이미 잊어버렸는데.
또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하기까지 당신이 겪어야 할 고통이, 당신이 보복을 해서 그에게 가할 고통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무얼 위해 칼날을 가는가, 그 칼날이 자기를 찌를 뿐이라면.
게다가 그가 복수를 당했을 때는 이미 잊어버렸을 것이기에, 그도 다시 당신에게 복수를 할 것이고, 이런 줄다리기는 끝없이 이어질 터이다. 끝내려면 당신이 끝내라. 그것이 속 편하다.
기억하라. 용서하지 않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자신에게 가장 해로운 일이라는 것을. 당신이 자신을 좀 더 아낀다면, 좀 더 존중하고 사랑한다면, 그 어떤 일을 겪었더라도 모두 용서하라. 그것이 자신을 위해 당신이 베풀 수 있는 큰 사랑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용서해야 하느냐고? 나도 용서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용서하는 것은 의외로 쉽다. 그냥 '용서해야지' 하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해보아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냥 시험해본다고 생각하고 해보자.)
"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개새끼를 용서합니다." (게다가 개는 무지하니 그럴 수 있지 않은가. 개를 미워해서 어쩌겠다는 말인가.)
"나는 뒤에서 내 차를 들이받은 xx를 용서합니다."
"나는 내 차에 돌맹이를 던져서 차에 흠집을 낸 oo를 용서합니다."
...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서 이렇게 기도하라.
"개새끼가, xx가, oo가 내가 누리고 싶은 만큼의 행복과 평화와 사랑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기도를 하는 순간, 당신은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을 느낄 수 있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자유로워졌음을 느낄 것이다. 이제 당신은 정말로 즐겁게 운전할 수 있고, 지금 가는 그 길에 집중할 수가 있다.
목적지를 알고, 그 길을 아는 안내자(또는 좋은 지도)가 있고,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니 그 무엇이 두렵겠는가. 그 무엇이 당신을 괴롭히겠는가. 험한 산길이 나타나고 외로운 숲이 나타나면 당신은 잠시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옆에 앉은 안내자가 길을 안다는 것을 믿기에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그럴 때는,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느낄 평화와 행복을 상상하며 지나가면 된다.
이렇게 하면, 당신은 지금 가는 길이 바로 내가 가야 할 길임을 확신하고, 갈래길이 나타날 때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황하지 않고, 지나간 일에 얽매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을 보면서, 흐뭇해하고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저절로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음을 흐트러뜨릴 것이 없기에.
어떤가. 현재에 집중하는 일, 생각보다 쉽지 않은가? 그러나 1그램의 실천이 1000톤의 이론보다 낫다는 격언을 잊지 말자. 이 글을 읽고 이해한 것만으로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었을지 모르지만, 실천하지 않는다면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 말 하지말고 실천하자. 그러면 당신은 즐겁게 운전할 수 있을 것이다. Bon Voyage!
Posted by gmong